주말 저녁에 갑자기 뇌를 비우고 볼 수 있는 강렬한 액션이 끌려서 OTT를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전지현 주연의 2009년작 영화 블러드를 보게 되었어요. 개봉 당시에 워낙 네티즌들 사이에서 1점 아니면 10점으로 평점이 극단적으로 나뉘었던 화제작이라 볼까 말까 꽤 망설였거든요.
그런데 막상 캔맥주 하나 따서 소파에 기대어 보고 나니 왜 그렇게 호불호가 갈렸는지 단번에 이해가 가면서도, 제 기준에서는 꽤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작품이더라고요. 프랑스의 크리스 나흔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전지현 님이 뱀파이어 헌터 사야 역을 맡아 큰 화제가 되었던 이 액션 판타지물은 정말 묘하고 독특한 B급 감성이 넘치는 영화였습니다.

세일러복을 입은 뱀파이어 헌터 사야의 고독한 복수극
영화 블러드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고 직관적이라서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영상에만 집중하기 좋아요. 인간과 뱀파이어의 피가 섞인 혼혈 여전사 사야가 세일러복을 입고 일본의 미군 기지 내 고등학교에 위장 전학을 가면서 본격적인 핏빛 스토리가 시작돼요. 그녀의 유일한 삶의 목적이자 사명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가장 강력하고 잔인한 뱀파이어 수장 오니겐을 찾아내서 복수하는 것이죠.
겉보기엔 작고 평범한 여학생 같지만, 교복 치마 아래에 길고 날카로운 일본도를 숨기고 다니다가 밤만 되면 뱀파이어들을 향해 거침없이 혈투를 벌이는데, 그 서늘하면서도 무심한 눈빛이 진짜 압도적이더라고요. 미군 기지 사령관의 딸인 앨리스와 우연히 얽히게 되면서 늘 외롭고 차갑던 사야가 조금씩 감정의 동요를 겪는 중반부 과정도 나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였어요. 뒤로 갈수록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핏빛 액션 하이라이트는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 정도로 꽤나 강렬했습니다.
영구와 땡칠이가 생각나는 CG? 돈 많이 쓴 B급 영화의 치명적인 매력
제가 이 영화 블러드를 보면서 느낀 가장 솔직한 감상평은 한마디로 ‘돈 많이 쓴 고퀄리티 B급 영화’를 본 느낌이라는 거예요. 사실 네티즌들 평점 중에 왜 0점은 없냐며 1점도 아깝다고 분노하시는 분들의 마음도 영화를 보다 보니 백번 이해가 가긴 했어요.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의 CG 퀄리티는 솔직히 말해서 옛날 어린이 영화 영구와 땡칠이가 생각날 정도로 어설퍼서, 맥주를 마시다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팍 터졌거든요. 억지로 영화다운 기승전결을 만들려다 보니 스토리가 군데군데 엉성해진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그런 쌈마이한 느낌마저 이 영화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무엇보다 전지현 님의 미모와 늘씬한 피지컬이 영화의 모든 단점을 멱살 잡고 하드캐리하는 느낌이었어요. 예전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보여줬던 코믹하고 찰진 영어 딕션과는 달리, 블러드에서는 영어를 꽤 진지하고 유창하게 구사해서 참 색다르고 신기하게 봤습니다.
자칫 이질감이 들 수도 있는 세일러복과 긴 장검의 조합을 그렇게 완벽하게 소화하는 걸 보면서, 왜 사람들이 지현 누나 너무 예쁘다고 10점을 주며 감탄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죠. 평점 테러를 하는 사람들에게 질투하지 말라며 10점을 주던 당시 팬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갈 정도였어요.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보다도 특유의 어두운 영상미나 화려한 검술 액션만큼은 예전 디워를 봤을 때보다 훨씬 타격감 있고 훌륭하게 느껴져서, 남들의 평점에 속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꽤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킬링타임으로 제격인 핏빛 액션 판타지
결론적으로 2009년에 개봉한 블러드는 개연성 넘치고 치밀한 웰메이드 명작을 기대하고 본다면 다소 실망할 여지가 충분하지만, 마음을 푹 비우고 그 자체의 감성을 즐긴다면 꽤 괜찮은 오락 액션 영화예요.
뱀파이어 장르 특유의 다크하고 피 튀기는 분위기를 선호하시거나, 전지현 님의 풋풋하면서도 날렵한 칼부림 액션 리즈 시절을 감상하고 싶은 분들께 주말 킬링타임용으로 살며시 추천해 드립니다. 가끔 튀어나오는 어설픈 크리처 CG에 너무 당황하지 마시고, 바삭한 팝콘 하나 품에 안고 가벼운 마음으로 화려한 액션의 세계에 빠져보시길 바랄게요!